전 인텔 CEO 팻 겔싱어가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인 HBM을 공개 석상에서 "형편없다"고 말했습니다. 흔한 신경전으로 보일 수 있지만, SK하이닉스 쪽 반응이 예상과 달랐습니다. 정확히는 부분 동의에 가까웠습니다. 그 이유를 발언 원문과 타임라인으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파리에서 나온 한마디
2026년 8월 8~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카루젤 뒤 루브르에서 열린 유럽 AI 콘퍼런스 "라이즈 서밋 2026" 패널 토론. 팻 겔싱어(전 인텔 CEO)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HBM(고대역폭메모리)은 형편없는(lousy) 메모리다."
근거로 든 것은 비트 효율입니다.
"HBM에서 1비트의 메모리를 만들기 위해 기존 메모리 4비트를 포기하게 된다. 비트 효율, 전력 효율, 대역폭 효율이 모두 낮다."
HBM은 D램을 실리콘관통전극(TSV)으로 층층이 쌓아 올리는 구조입니다. 적층 자체에 리던던시·리페어용 회로가 추가로 들어가, 같은 웨이퍼로 일반 D램을 만들 때보다 실제로 판매 가능한 유효 비트 수가 줄어듭니다. 겔싱어는 이 구조를 "열 샌드위치"라고 불렀습니다. 층을 쌓을수록 가운데 다이가 열을 배출하지 못하고 위아래로 갇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단서를 달았습니다. "지금 AI 수요에는 그나마 가장 나은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다른 메모리가 필요하다는 취지이지, HBM을 당장 버리라는 주장은 아닙니다.
SK하이닉스는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이 발언에 SK하이닉스 김호식 부사장(메모리 시스템 리서치 담당)이 답했습니다.
"HBM에 대해 말한 내용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HBM은 메모리 월 문제의 최종 해답은 아니다." "현재 우리가 가진 메모리 가운데 가장 좋은 메모리다." "다른 해법들도 연구하고 있다."
겔싱어가 이 대답을 듣고 "그럼 SK하이닉스도 HBM이 나쁜 메모리라고 인정하는 것이냐"고 되묻자, 김 부사장은 표현을 정확히 다시 정리했습니다. 요지는 "나쁘다"가 아니라 "완결이 아니다"입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발언이 나오기 나흘 전, SK하이닉스는 이미 자체적으로 "HBM 다음"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나흘 앞서 있었던 발표
2026년 8월 4일,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서 열린 'FMS 2026'에서 SK하이닉스는 3D 적층 D램과 HBF(고대역폭 플래시)를 공개했습니다.
| 항목 | 3D 적층 D램 | HBF(고대역폭 플래시) |
|---|---|---|
| 구조 | GPU·NPU 바로 위에 D램을 수직으로 쌓음 | 낸드 플래시를 쌓아 만든 메모리 |
| 목표 | SRAM보다 큰 용량을 HBM보다 연산장치에 더 가깝게 배치 | 초당 테라바이트급 대역폭, 마이크로초 단위 지연시간 |
| 노리는 문제 | 메모리 핀 수 증가, 전력 소비 | 모델 가중치·KV캐시·RAG 데이터 등 반복 읽기 데이터 |
| 파트너 | — | 샌디스크(규격 공개 후 OCP로 배포 계획) |
즉 김 부사장의 "최종 해답은 아니다"는 겔싱어에게 밀려서 나온 인정이 아니라, 나흘 전 회사가 이미 무대에서 공개한 로드맵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순서로 보면 SK하이닉스가 먼저 "다음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고, 겔싱어는 그것을 더 강한 표현으로 옮겼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겹치는 그림 — 다른 자리에서 나온 두 조각
HBF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짚을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최근 업계 리포트("Future of Memory Storage 2026" 콘퍼런스 후기)에서 2030년까지 영구 KV캐시(AI가 대화 맥락을 기억하는 데 쓰는 데이터) 수요가 약 1제타바이트에 이를 수 있고, 이는 2027년 예상 업계 전체 비트 공급량의 70% 이상에 해당한다는 추정이 나왔습니다. 이 리포트를 낸 회사가 샌디스크이고, 샌디스크는 바로 위 표의 HBF 파트너사이기도 합니다.
두 자료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나왔지만, HBF가 정확히 그 KV캐시·모델 가중치 데이터를 겨냥해 설계된 메모리라는 점에서 같은 그림의 다른 조각입니다. 수요 전망을 낸 회사가 그 수요를 받아 낼 제품의 파트너로도 등장한 셈입니다.
메모리 월의 또 다른 후보, CXL
3D 적층 D램·HBF와 별개로 거론되는 후보가 CXL(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입니다. CPU·GPU·메모리를 묶어 대역폭과 용량의 한계를 확장하는 개방형 인터커넥트 기술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CXL을 활용한 추론 성능 실증 사례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다만 CXL에는 정치적인 지형도 있습니다. 이 표준은 인텔이 주도해 만들었고, 엔비디아는 GPU 간 연결에 자체 독점 규격인 NVLink를 씁니다. CXL 같은 개방형 기술이 확산될수록 엔비디아의 독점 생태계는 약해질 수 있어, 엔비디아 쪽에서 CXL을 적극적으로 밀어줄 유인이 크지 않습니다.
이 구도를 감안하면 겔싱어의 HBM 비판이 순수한 기술 평가만은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텔은 CXL 주도권을 쥐고 있고, HBM 시장은 지금 엔비디아·SK하이닉스·삼성전자 조합이 사실상 쥐고 있습니다. 전 인텔 CEO가 그 시장을 깎아내리면서 인텔 쪽 표준을 은근히 부각하는 그림으로 읽을 여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는 정황에 근거한 추정이며, 겔싱어가 실제로 그런 의도로 발언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 겔싱어가 말한 "4비트 포기" 계산의 근거 원자료 — TSV 적층에 따른 오버헤드 비율이 세대별로 실제 얼마나 되는지는 발언 보도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 HBF의 "초당 테라바이트급" 대역폭이 구체적으로 몇 TB/s인지, HBM4 대비 실측 비교 스펙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 3D 적층 D램의 양산 시점 — FMS 2026 발표는 로드맵 수준이었고, 구체적인 연도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발언들을 종합하면, SK하이닉스가 HBM이 완벽하다고 주장한 적은 없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겔싱어의 발언은 공격이라기보다, SK하이닉스가 나흘 전 이미 인정한 이야기에 더 강한 표현으로 맞장구친 모양새에 가깝습니다. HBM 다음 세대가 3D 적층 D램인지, HBF인지, CXL인지, 아니면 셋의 조합인지는 아직 갈리지 않았습니다.
숫자와 인용문은 다음뉴스 단독 보도, 한국경제·헤럴드경제 관련 기사를 근거로 정리했습니다. 이 리포트는 AI가 작성했고 발주자가 사후 검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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