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은 D램을 8단, 12단, 16단으로 쌓아 올린 덩어리입니다. 쌓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그 층들을 어떻게 붙이느냐가 회사마다 다르고, 이 붙이는 방식이 열을 얼마나 잘 빼내는지와 몇 단까지 쌓을 수 있는지를 정합니다.
이름이 셋 나옵니다. MR-MUF, TC-NCF, 하이브리드 본딩. 이 글은 셋이 각각 무엇이고, 어느 회사가 무엇을 쓴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는지, 그리고 셋 중 가장 유망하다고 몇 해째 불리는 하이브리드 본딩이 왜 아직도 양산에 안 들어갔는지를 회사 발표와 업계 보도를 구분해 정리합니다.
왜 붙이는 방법이 문제가 되나
다이를 낱장으로 쌓으면 층 사이에 빈틈이 생깁니다. 이 빈틈을 무엇으로 채우고 어떻게 압착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가 갈립니다.
열이 빠져나가는 길. 빈 공간이 남으면 그 자리가 단열재처럼 작동해 열이 갇힙니다. AI 가속기 옆에 붙는 HBM은 원래도 뜨거운 자리에 있어서, 이 문제가 층수가 늘수록 커집니다.
쌓을 수 있는 높이. 층마다 접합부 두께가 있으므로, 접합부가 두꺼우면 같은 층수를 쌓았을 때 전체 스택이 더 두꺼워집니다. 패키지 두께에는 한도가 있어서, 접합부를 얇게 만들수록 더 많은 층을 넣을 여유가 생깁니다.
HBM4부터 이 문제가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인터페이스 폭이 1,024비트에서 2,048비트로 두 배가 되고 층수도 12단을 넘어 16단까지 올라가면서, 접합 방식의 선택이 곧 경쟁력이 됐습니다.
세 가지 방법
MR-MUF — SK하이닉스가 주력으로 쓰는 방식
MR-MUF(Mass Reflow Molded UnderFill)는 다이를 다 쌓아 올린 뒤 그 사이 공간을 액체 보호재로 한 번에 채우고 굳히는 방식입니다. 액체가 틈을 빈틈없이 채우기 때문에 열을 빼내는 데 유리하다고 SK하이닉스는 설명합니다.
개량판인 Advanced MR-MUF는 2023년 12단 HBM3에 처음 적용됐습니다. SK하이닉스는 이 개량으로 방열 성능이 10% 개선됐고, 12단 HBM3E에서는 D램 칩 두께를 40% 줄여 12단을 8단과 같은 두께로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시장에서 신뢰성이 검증된 Advanced MR-MUF 공정을 HBM4에 채택
2026년 6월 12단 HBM4E 샘플에도 이 공정이 이어졌습니다. 2019년 첫 공개 이후 현재까지 SK하이닉스의 유일한 양산 접합 공법입니다.
TC-NCF — 삼성전자가 밝힌 방식
TC-NCF(Thermal Compression Non-Conductive Film)는 반대 순서로 갑니다. 다이를 한 장 올릴 때마다 그 사이에 비전도성 필름을 깔고 열과 압력으로 눌러 붙입니다. 층마다 처리하므로 각 층의 두께와 정렬을 세밀하게 관리할 수 있는 대신, 층 수만큼 공정이 반복됩니다.
삼성전자는 2024년 2월 36GB HBM3E 12단을 발표하며 "advanced TC NCF"를 적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칩 사이 간극을 7㎛까지 좁혀 HBM3 8단 대비 수직 밀도를 20% 이상 높였다고 설명했습니다.
HBM4에서는 삼성이 무엇을 쓰는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2026년 2월 HBM4 출하 보도자료와 제품 페이지는 TSV만 언급할 뿐 접합 공법을 명시하지 않습니다. 2024년 8월 기술 블로그에서는 HBM4용으로 NCF 어셈블리와 하이브리드 본딩을 함께 개발 중이라고 병기했습니다. 이 자리에 추측을 채워 넣지 않습니다.
하이브리드 본딩 — 세 회사 모두 후보로만 두고 있는 방식
하이브리드 본딩(삼성은 HCB, Hybrid Copper Bonding이라고 부릅니다)은 앞의 둘과 다른 발상입니다. 범프(작은 납·구리 돌기) 자체를 없애고 구리 패드끼리 직접 맞붙입니다.
범프가 사라지면 두 가지가 동시에 좋아집니다. 층 간 거리가 줄어 같은 두께에 더 많이 쌓을 수 있고, 범프 사이 빈 공간이 없어져 열이 빠져나갈 길이 좋아집니다. 16단 이상 HBM에서 이 둘이 동시에 병목이 되기 때문에, 하이브리드 본딩은 몇 해째 "다음 세대의 답"으로 거론돼 왔습니다.
삼성전자는 2026년 3월 GTC에서 HCB를 "차세대 HBM이 16단 이상을 달성하면서 TCB(열압착 본딩) 대비 열저항을 20% 이상 낮출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2026년 8월 현재, 세 회사 중 HBM 양산에 하이브리드 본딩을 적용했다고 발표한 곳은 없습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부터 개발을 언급해 왔고, 2024년 11월 16단 HBM3E를 발표하면서 곽노정 CEO가 이렇게 밝혔습니다.
양산 검증된 Advanced MR-MUF를 적용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별도로 백업 공정으로 개발 중이다
그 뒤 HBM4·HBM4E 발표에는 하이브리드 본딩 언급이 나오지 않습니다. 거의 3년째 "검토·백업"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셈입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쪽에서 4㎛ 이하 초미세 피치 구리 인터커넥트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으나, 메모리 쪽 양산 적용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셋을 나란히 놓으면
| MR-MUF | TC-NCF | 하이브리드 본딩 | |
|---|---|---|---|
| 처리 순서 | 다 쌓고 한 번에 | 한 층씩 | 한 층씩(범프 없이 직접 접합) |
| 범프 | 있음 | 있음 | 없음 |
| 공개 채택사 | SK하이닉스 | 삼성전자(HBM3E) | 없음 — 전부 개발·검토 단계 |
| 최초 공개 | 2019년(HBM2E) | 2024년 2월(HBM3E 12단) | 2023년(SK하이닉스 언급 시작) |
| HBM4 적용 | 채택 확인됨 | 미확인 | 미적용 |
| 마이크론 | 공개 안 함 | 공개 안 함 | 공개 안 함 |
마이크론은 세 이름 중 어느 것도 공식적으로 쓴 적이 없습니다. HBM3E·HBM4 보도자료와 제품 페이지 어디에도 MR-MUF·TC-NCF·하이브리드 본딩이 등장하지 않고, "advanced packaging"이라는 포괄 표현만 씁니다. 이 빈칸은 기술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말을 안 했다는 뜻입니다. 이 구분을 흐리면 "마이크론은 접합 기술이 없다"는 엉뚱한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왜 하이브리드 본딩은 계속 미뤄지나
하이브리드 본딩이 필요하다고 했던 이유는 높이였습니다. 단수를 올리면서 패키지 두께 한도를 지키려면 다이를 더 얇게 갈아야 하고, 그러면 범프를 쓰는 기존 방식이 한계에 닿는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이 압력의 근원 쪽이 먼저 물러섰습니다. 업계 보도에 따르면 JEDEC의 HBM 패키지 두께 기준이 HBM3E까지 720㎛였다가 HBM4에서 775㎛로 완화됐습니다. ⚠️ 이 수치는 JEDEC 발표문에서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라 보도 인용입니다. JEDEC 문서 원문은 유료라 대조하지 못했습니다.
두께 압박이 풀리는 동안, 두 회사 모두 하이브리드 본딩 대신 방열 쪽 대안을 함께 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HPB(Heat Path Block), SK하이닉스는 iHBM입니다. 문제를 접합 방식이 아니라 열 통로 설계로 우회하는 접근입니다.
2026년 7월 업계 보도(TrendForce)는 두 회사가 하이브리드 본딩 도입 시점을 재검토하고 있고, 16단 HBM4E가 가장 이른 도입 시점으로 거론된다고 전했습니다. 근거로 제시된 것은 실증 데이터가 아니라 "고객사와 16단 HBM에 대한 논의가 아직 제한적이며, 12단 HBM4E가 여전히 주류"라는 업계 관측입니다. 이것도 업계 예측이지 회사의 확정 일정이 아닙니다.
그래도 움직임은 있다 — 검증과 장비 두 갈래
공식 발표는 없지만, 이 자리가 완전히 멈춰 있는 것도 아닙니다. 2026년 상반기에 세 가지 신호가 나왔습니다. 셋 다 회사의 공식 발표가 아니라 업계 보도라는 점을 먼저 밝힙니다.
① 검증 단계 보도. 2026년 4월 29일 TrendForce는 The Elec을 인용해 SK하이닉스가 12단 하이브리드 본딩 HBM의 검증을 완료했고, 양산을 위한 수율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구체적인 수율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검증 완료"는 "양산 적용"과 다른 단계입니다 — 위에서 확인했듯 SK하이닉스의 공식 발표에는 여전히 하이브리드 본딩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② 양산용 장비 발주 보도. 업계 소식통을 인용한 The Elec 보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2026년 2월 미국 Applied Materials와 네덜란드 Besi가 공동 개발한 하이브리드 본딩 인라인 시스템 1대를 발주했습니다. 추정 비용은 약 200억원입니다. 기사는 이 장비를 "양산용(mass-production equipment)"이라고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이번 발주를 "향후 개발을 위한 준비 단계(preparatory step)"라고 설명합니다. 양산용 사양의 장비를 예비적으로 들여놓은 것으로 읽힙니다 — 이 발주 자체가 곧 양산 결정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③ 16단 실물이 전시됐다. 2026년 8월 4일~6일 열린 FMS 2026 전시장에 SK하이닉스가 16단 48GB HBM4 실물을 전시했습니다(7월 샘플링을 시작한 12단 HBM4E, 12단 HBM3E와 나란히). 다만 이 전시에서 접합 공법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16단 하드웨어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 하드웨어가 무엇으로 붙었는지는 별개의 정보입니다.
세 신호를 합치면, 하이브리드 본딩은 "검토 중"에서 "검증과 장비를 갖춰 가는 중"으로는 한 걸음 나갔지만, "양산에 넣었다"는 회사의 확인은 여전히 없습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
- 삼성전자가 HBM4에 실제로 쓰는 접합 공법. TSV만 공식 언급되고 TC-NCF·하이브리드 본딩 중 무엇인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 JEDEC 패키지 두께 기준 720㎛→775㎛ 완화의 원문. JEDEC 발표문을 직접 대조하지 못했고, 보도 인용에 의존했습니다. 일부 자료는 여기에 1,000㎛ 단계를 추가로 언급하지만, 그 출처를 교차 확인하지 못해 이 글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 SK하이닉스 12단 하이브리드 본딩 검증의 구체적 수율. TrendForce·The Elec 보도에 수치가 없습니다.
- Applied Materials-Besi 장비 발주의 SK하이닉스 측 공식 확인. 업계 소식통 보도만 있고, SK하이닉스가 직접 확인한 자료는 찾지 못했습니다.
- 마이크론의 접합 공법. 공개된 적이 없습니다.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모른다는 뜻입니다.
다음에 볼 것
16단 HBM4E의 정식 양산 발표가 나올 때, 그 발표문에 접합 공법이 명시되는지를 봅니다. 지금까지 패턴대로면 SK하이닉스는 이름을 밝힐 가능성이 높고(MR-MUF든 하이브리드 본딩이든), 삼성과 마이크론은 공법명을 생략한 채 성능 수치만 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경우에도 "기술이 없다"가 아니라 "밝히지 않았다"로 읽어야 합니다 — 이 글 전체가 그 구분 위에 서 있습니다.
이 사이트는 접합 공법을 메모리 판도 점수에 넣지 않습니다. 접합은 열·수율·원가에 영향을 주는 공정 선택이지, 그 자체로 시장 점유율이나 실적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16단 이상 HBM 경쟁에서 어느 회사가 먼저 이 벽을 넘는지는 다음 세대 HBM4E·HBM5 경쟁의 갈림길이 될 수 있어, 확인되는 대로 MR-MUF·TC-NCF·하이브리드 본딩 세 위키 항목을 고칩니다.
밑줄 친 말은 용어 위키로 이어집니다.